KBS1TV 금요일 밤 12시 "낭독의 발견" 중에서..
제목 : "모든 웃음은 눈물 근처에 있다!" - 방송인 김제동 편
챔피언; 노예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이름
낭독 김제동
연주 피아노 : 이 경 하모니카 : 박종성
♬ <일어나> ... 김광석 曲
1974년
자이르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24살의 복싱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
vs
32살의 노장 복서……
캐시어스 클레이 (Cassius Marcellus Clay)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쫓겨난 금메달리스트는
그 길로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한
영광은 아무 쓸모가 없다.”
1964년 WBC 헤비급 챔피언은
백인 주인의 성(姓)과 노예의 이름을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이름
스스로 선택한 삶
링 위에서보다
링 밖에서 더 많이 얻어맞았던
그의 새로운 이름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1967년 베트남전 징집명령 거부
3년간 출전 금지
챔피언 타이틀 박탈
권투선수 자격 박탈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았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
링 밖에서 빼앗긴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
32살의 나이에 다시 링 위에 오른
무하마드 알리.
젊은 챔피언 조지 포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주먹을 겨눈
무하마드 알리.
“나는 챔피언이다.
나는 이긴다.”
8회까지 고전하던 무하마드 알리는
순식간에 조지 포먼을 KO시켰다.
“자신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소망, 꿈
그리고 이상이 진짜 챔피언을 만든다.”
『불안』중에서
글 알랭 드 보통
낭독 김제동
연주 피아노 : 이 경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曲
귀족 계급의 지원을 받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던 중세사회는 여러 참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맛보기 어려운 몇 가지 행복을 누렸다. 민중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신분 외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도자와 동등해지기를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갔지만 반감을 품지도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위치가 불변의 자연 질서라고 여겼다.
중요한 것은 살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취하는 것보다도 태어날 때 얻는 신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고 내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근대사회의 위대한 야망은 이러한 고정화된 세습적 특권을 없애 개인적 성취가 지위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개인적 성취란 주로 경제적 성취를 의미한다.
이제 지위는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오는 변하지 않는 신분보다는 급속하게 움직이는 무자비한 경제 내에서 거두는 성과에 달려 있다. 경제의 특성 때문에 지위를 얻으려는 노력은 그 결과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동료나 경쟁자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선택한 목표를 이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굽이치는 시장의 파도 속에서 재수 없는 흐름에 말려들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실패는 동료의 성공 가능성 때문에 더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중에서
글 알랭 드 보통
낭독 김제동
연주 하모니카 : 박종성 피아노 : 이 경
♬ <사랑이라는 이유로> ... 김형석 曲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클로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방식으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녀에게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그녀는 자신의 코는 너무 작고, 입은 너무 크고, 눈은 녹색이 모자라고, 가슴은 너무 작고, 손은 너무 넓적하다고 고집을 부린다.
클로이는 아름다움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인데, 그녀는 자신이 그 기준에 엄청나게 미달한다고 믿는다.
클로이는 거울로 자신의 몸을 볼 때마다 뭔가“삐딱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대체 뭐가 그렇게 삐딱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클로이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로이의 얼굴은 내가 좋은 삶과 동일시하는 특질들을 암시했다. 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도를 암시했다. 나의 상상력은 클로이의 벌어진 치아 틈 사이에서 뛰어노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클로이의 얼굴은 그 모호함 때문에, 오리와 토끼가 둘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리- 토끼 그림과 비슷했다. 상상력이 오리를 찾으면 그는 오리를 보게 될 것이다. 상상력이 토끼를 찾으면 토끼가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의 경향이다.
물론 나를 지배하는 주된 경향은 사랑이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중에서
글 장영희
낭독 김제동
연주 피아노 : 이 경 하모니카 : 박종성
♬ <나무> ... 김광석 曲
사랑하는 너에게
학교라는 보호구역을 떠나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너는 지금 네 생애 가장 위대한 시작을 다짐하고 있다.
삶의 한 장을 끝내고 좀 더 넓은 세계로 비상하는 문턱에 서 있는 네 얼굴은 미래에 대한 흥분과 희망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지금 네가 들어가는 그 세상은 이제껏 책 속에서 보았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인지도 모른다.
진리보다는 허위가, 선보다는 악이,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줄 바꿔 서는 기회주의, 호시탐탐 일확천금을 찾아 헤매는 한탕주의, 두 손 놓고 자포자기하는 패배주의에 아직은 이상을 꿈꾸는 너는 길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의 삶은 버겁지만 “삶이 주는 기쁨은 인간이 맞닥뜨리는 모든 고통과 역경에 맞설 수 있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서머셋 모옴은 말한다.
꿈을 가져라.
네가 갖고 있는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설사 1%뿐이라 하더라도 꿈을 가져라.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되새겨라.
네 삶의 주인은 너뿐이다.
너만이 네 안의 잠자는 거인을 깨울 수 있다.
이제 세상에 나가 너의 젊음으로 낡은 생각들을 뒤엎고, 너의 패기로 세상의 잠든 영혼들을 깨우고, 너의 순수함으로 검은 양심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너의 사랑으로 외롭고 소외된 마음들을 한껏 보듬어라.
너의 승리의 행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