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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출처 :: http://www.leechangho.com > 칼럼방 > s2bong의 명품칼럼
"다름"과 "틀림"에 대한 소고 中 발췌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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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수(사?)"라는 책이 한국에 출판되면서 사회적으로 "똘레랑스"라
는 용어의 사용빈도가 늘어나게 되었다. 영어의 "tolerance--맞나 가물가물하네.."에 해당하는 프랑
스 단어인 "똘레랑스"는 관용이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횽세화씨는 "똘레랑스"는 단순히
널리 받아들인다는 관용의 의미보다는 받아들이고 또한 그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의 "용인"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다르구나라는 인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르다는 그 것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정신이 바
로 "똘레랑스"인 거이다. 즉, "똘레랑스"는 다름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인식의 방법이자 그에대한
행동을 규정하는 하나의 생활양식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적 틀이 프랑스의 문화의 전반을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하나의 유행하는 문화 양식에 획일적으로 따라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남들과 다른 개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된다. 우리에게 적대적 의미로 여겨지는 사회당이나 공산당과 같은 사
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선거에 참여해 정권을 획득하기도 하고, 경제인 총 연합회의 회장이 자신
의 소신에 따라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하며,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신
문 칼럼란에 게재해 국민들과 토론하며 설득하기도 하는 그런 장면들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나라가 프랑스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은 존
중하고 인정해주는 프랑스에서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
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극우나 극좌는 프랑스의 일반 대중에게 그리 환영받지는 못한다.---

이러한 문화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토론이 일반화 되어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
한 것이다.--이 글의 핵심은 프랑스의 문화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프랑스의 장점에 대해서 이
야기한다고 해서 프랑스의 단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둔다. 스스로를 미천하게 여기
고 남을 숭상하고픈 마음이 아니라 남의 장점을 본받아 우리를 풍성케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도 실
로 뛰어난 토론 문화의 유산이 있다. 실례로 나이차가 많이 났던 퇴계 선생과 기대승(이것도 이름이
가물가물하네)사이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서신 왕래를 보자면 그 철학적 깊이와 토론과 비판의 날카로
움이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좌파 진영과 우파진영의 정책 토론은 악의적 비난과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과 무책임한 폭로일색인 우리 나라 정치계의 토론과는 근본적으로 다
른 양상을 보인다. 전문적 지식과 명징한 논리,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적 구사....실로 프로페
셔널의 전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이다.

하지만 프랑스에 "똘레랑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앙똘레랑스"도 존재한다. 용어
상 "똘레랑스"의 반대 개념인 "앙똘레랑스"는 용인할 수 없음을 뚯한다. "똘레랑스"가 "다름"에 대한
것이라면 "앙똘레랑스"는 "틀림"에 관한 것이다. 196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투쟁의 과
정에서 알제리 저항단체에 무기 밀매를 도왔던 지식인 샤르트르의 행동방식은 잘못된--즉, 틀린--프랑
스 정부의 정책에 대한 "앙똘레랑스"였던 것이며, "똘레랑스"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문화적, 인종적 우
월의식에 사로잡혀 "똘레랑스"의 정신을 보여주지 않는 극우파의 수장인 르펜이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
표에 나온 것을 프랑스의 수치로 생각하며,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우파의 자크 시락에게 몰표에
가까운 투표를 보여준 프랑스 좌파의 선택 또한 그런 맥락속에 있는 것이다.--당시 시락에게 몰표를
주지 않았어도 르펜이 당선되지는 않았을 정도로 르펜과 시락은 지지율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좌파진영은 시락에게 표를 던졌다.-- "다름"과 "틀림"을 명확히 구분하고, "다
름"에 대해 실로 관대한 "똘레랑스"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틀림"에 대해서 가차없이 "앙똘레
랑스"를 보이는 것이 프랑스의 실로 탁월한 시대정신인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했다. 명확한 근거없이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른것에 냉혹하고, 틀린 것에 관대했던 것이 지난 시절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
던가....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실로 냉혹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우리는 부패한 정치인에
게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경상도인 또는 전라도인이라는 것은 다른 것일지언정 틀린 것
은 아니었음에도 서로에게 우리는 실로 냉혹한 모습을 보여주지 아니하였는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이런 구태의 모습들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 전체
의 변화의 속도는 그런 열망에 비해 너무나도 느린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인터넷 글씨기가 일반화되면
서 익명성의 가면아래 자신을 숨기며 악의적인 비난과 근거없는 모함, 감정적이고 인신 공격적인 리플
들이 난무하는 광경을 보면 실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차라리 지난 시절 그나마 익명성의 가면아래 스
스로를 숨기지 않았던 정치인들이 정직했다할까......--솔직히 그들이 낫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들
지 않지만...--

특히 비난이 틀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름에 관한 것일때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똘레랑스"의 정
신아래 논쟁과 토론 비판이 난무하는 프랑스에서는 악의적 비난과 건전한 비판의 구분을 명확히 한
다. 적어도 다음의 요소들에 의해 그 타당성을 시험받는다. 건전한 비판은 "틀림"을 그 내용으로 하
지 "다름"을 그 내용으로 해서는 안된다. 또한 비판의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되고, 그 사실들
이 주장의 근거로써 타당해야 한다. 지금 인터넷 게시판의 많은 비판의 글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갖추
지 못한 채 감정적 반발과 상대방 흠집내기로 일관하고 있어 많은 아쉬움을 준다. 과학 문명의 발전에
맞추어 그에 맞는 수준의 정신 문화를 만들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

비난과 비판 사이의 이러한 간극을 이해하고서 다시금 며칠전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글들을 읽어
보았다.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아무리 읽어보려 해도 도저히 건전한 비판의 영역에 넣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창호 9단의 "어눌함--개인적으로는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선정하고 싶지만"과 김성룡 사범
의 "자유분방함"은 다름일지언정 틀림이 아니지 않는가.....그것이 왜 비판의 대상인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살아온 방식과 환경도 다르고, 바둑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이
것은 나는 이런 성격이 좋다라는 개인의 호불호에 관한 문제이지, 왜 이렇느냐고 따지는 시비의 문제
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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